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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수필, 나는 오월이면 '수필'을 읽는다!

by 삐비랑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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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좁쌀만한 작은 쥐똥나무꽃 향기는 붉게 작렬하는 석모도 가을 노을보다 더 고혹적이다, 이 향기에 취해야 5월이다!
하얀 좁쌀만한 작은 쥐똥나무꽃 향기는 붉게 작렬하는 석모도 가을 노을보다 더 고혹적이다, 이 향기에 취해야 5월이다!

해마다, 나는 5월이 오면 피천득의 '수필'을 읽는다. 천천히 읽으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물결처럼 일어난다. 그의 글은 나에게 마음의 여유와 무심한 흥과 파격의 상상을 보내온 까닭이다. 

문학은 아름다운 미의 세계이기에 일상의 사전적 의미 밖의 오묘한 깊이와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미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심미적 안목으로 다가가야 작품에 흐르는 감흥과 낭만과 풍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글쓴이의 저류를 흐르는 고상함과 멋, 그윽한 내면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미적 도취와 미적 감탄이 없는 사람이라면 시인이나 수필가의 문학적 예술적 심미적 낭만적 유미적인 글의 흥을 온전히 다 누릴 수 없다. 
 
한 작가의 글이나, 자연의 꽃이나 물이나 산, 그리고 인정이 융숭한 사람은 오래, 자주 만나보아야 보인다,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자주 만나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뿌듯한 행복감이 안개처럼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심전심 꽃과 물과 벗과도 하나가 된 까닭이다. 작은 울림에도 길고 깊은 여운이 일렁인다. 인생은 사소한 일상의  작은 인연들로 인해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높은 산을 갈 때면 새로운 산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오감은 이미 익숙해진 전에 가본 옛 길로 나를 인도하는 것이다. 나의 감각이 친숙한 산길은 물소리만 들어도 어디쯤인가를 알 수 있고 나의 몸과 마음의 리듬을 벌써 알고 나에게 묵언의 응원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열고 내 밖의 세계를 내 안에 들이면 조화의 물길이 맑고 깊게 흐르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일까,
 

장미의 향기는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이해는 둘이지만 느끼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장미의 향기는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이해는 둘이지만 느끼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시 5월이 왔다, 지금이 그 5월이다, 지금 고샅길 골목마다 고혹의 쥐똥나무향기 은은한 여인의 유혹이다. 나의 5월은 또 어떻게 그려질까, 어느새 5월이 가고 나면 어떤 기억이 나의 가슴에 남을까, 영원히 머물러 있을 오월이 어디 있으랴, 곧 오월은 나의 곁을 떠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건너온 6월은 풍성한 녹음과 더불어 우리를 품어 줄 것이다, 때가 되면 다음 역을 향하여 떠나는 열차처럼...

피천득의 '수필'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우리는 영혼의 근골을 이루고 있을 이 작품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풋풋한 감성과 촉기 탱탱한 청춘의 낭만과 순수를 동경하는 글 읽기를 함께 즐기고 싶은 것이다. 오월의 여흥과 신바람이 밀려온 탓이다. 심미적 지향이 아니고서야 인생의 풍류와 멋을 어디서 논하랴,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고백한 러시아 문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진대, 우리의 삶은 왜 이리도 팍팍한 길인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에 여백을 들여보자, 그리고 다시 피천득의 '수필'을 읽으며 청춘의 봄날을 다시 만나 놀아보자! 일상의 '파격'이 아니면 어디서 행복이 오랴,
 

청초한 몸맵시 섬초롱꽃은 오월 결혼한 신랑 신부의 신행길 밝혀주는 청사초롱이다!
청초한 몸맵시 섬초롱꽃은 오월 결혼한 신랑 신부의 신행길 밝혀주는 청사초롱이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는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 분지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피천득, ‘수필’에서 

 

수필이든 꽃이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파격을 모르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팍팍한 길인가!
수필이든 꽃이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파격을 모르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팍팍한 길인가!
 
 
20230522, 삐비랑의 사소한 일상의 행복 찾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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