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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유월, 그리움은 익어 알알이 살구로 온다!

by 삐비랑 2023.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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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유월은 살구를 기다리며 자랐다! (다음백과사전에서 사진 인용)
유년의 유월은 살구를 기다리며 자랐다! (다음백과사전에서 사진 인용)

유월, 그리움은 익어 알알이 살구로 온다!

(해마다 노오란 유월과 살구는 눈시울 젖은 그리움으로 나에게 온다)

 

 
어린아이의 고향집 뒤뜰 살구나무는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처럼 무성했다
살구는 노랗고 탐스럽게 6월의 길을 비춰준다
고적한 뒤뜰을 밝혀주는 호롱불이다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를 마냥 설레게 하는 일은
이른 아침 눈 뜨자마자 뒤뜰에 떨어진 살구를 줍는 일이었다
살구나무에 달린 노란별을 쳐다보는 일은
호젓하면서도 포근한 기다림이었다
 
입안 가득한 시고 달달한 살구의 향기!
노랗게 노랗게 익어가는 눈 시린 6월의 하늘!
 
누렇게 보리는 익어가고 긴 하루가 지루한 여름
오정이 가까이 올 무렵이면 어린아이는
살구가 하도 오지고 흐뭇하고 보고 싶어서
장독대 항아리만 살짝 열어보고 돌아오려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게 웬일인가,

항아리 속 살구는 오간 데 없고 텅 빈 절망뿐
 
나의 살구는 어디로 갔을까,

회동그란 눈에 살구 같은 눈물 뚝뚝 떨어지고
눈물만 흥건히 머금고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노란 살구를 그리며
노랗게 물든 유월 한때를 보낸 어린아이는
살구나무의 살구가 시나브로 사라졌을 때
나무가 까맣게 먹구름에 덮이는 무서운 꿈에 쫓기다가
결국, 날 밝은 이른 아침이면 머리에 키를 쓰고
골목마다 소금 동냥 돌아다니며
‘싸개 싸개 오줌싸개’ 동네 사람한테 조롱당할 뻔한 날도 있었다
 
아주 훗날, 그 어린아이가 철이 들었을 때
딸 셋을 연달아 두고 아슬아슬하게 아들 낳은 엄마는
만날 딸만 둔다는 동네 사람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죄도 없는 딸들을 타박한 것이 늘 안쓰럽고 민망하여
세 딸들이 항아리 속 살구를 다 훔쳐 먹어도
어린아이가 섭섭해할 것을 훤히 알고도 본체만체 모른 척했노라고
엄마는 어린아이, 아들 손잡고 울먹이며 웃으셨다

 

찔레꽃 피고 살구가 익고 밤꽃이 피면 가파도의 청보리는 누렇게 익어간다고 했다!
찔레꽃 피고 살구가 익고 밤꽃이 피면 가파도의 청보리는 누렇게 익어간다고 했다!

푸른 청보리가 누렇게 황톳빛으로 익어갈 무렵이면 살구나무에 살구가 익어갈 때다.

동네 과일가게 앞 노랗게 잘 익은 살구를 쌓아놓은 함지박을 볼 때면 장흥군 장흥읍 평장리 649번지, 나의 옛집 뒤뜰, 아름드리 녹음 무성한 살구나무와 노란 별처럼 반짝이는 살구가 그립다.
 

저 아청의 하늘 너머로 밀려오는 6월의 추억, 사라진 모든 것들은 아슴한 별빛이다, 하루가 허전하면 하늘을 보자!
저 아청의 하늘 너머로 밀려오는 6월의 추억, 사라진 모든 것들은 아슴한 별빛이다, 하루가 허전하면 하늘을 보자!

어른들이 다 들로 나가고 텅 빈 집을 백구랑 혼자 보고 있을 때나 이른 아침 눈뜰 때면, 살구나무 밑을 오가며 떨어진 살구를 주워 모으는 일은 어린 나의 흐뭇하고 오진 보람이었다. 먹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참으며 항아리 안에 살구를 가득 모아놓고 그 살구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에게 여간 오지고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어디에 살구를 숨겨놓은 지를 안 누나들은 번번이 그 아까운 살구를 나 몰래 다 먹어 치우곤 하였다. 그래도 어린 나는 무슨 영문도 모른 채 주워 모은 살구를 그곳에 숨겼고 누나들만 늘 횡재를(?) 하였던 것이다.
 
6월이 오면 고향집 마당 노랗게 익어가는 낮달처럼 탐스러운 살구가 눈에 선하다. 유난히 반짝이던 장독대, 대문 앞까지 그림자 드리운 키 큰 강둑의 솟대, 무상한 세월에 쓸려 가버린 내 유년의 탐스럽고 소박한 기억이, 노란 살구의 추억이 밀물처럼 밀려와 그리움 출렁인다.
 

해거름 오금동산에 올라 멀리 북한산 능선을 보며 내 안에 어리는 산그늘을 떠올린다!
해거름 오금동산에 올라 멀리 북한산 능선을 보며 내 안에 어리는 6월의 그늘을 떠올린다!

유월, 살구가 익어갈 때면 가슴에 별빛처럼 쏟아져 내린 노란 살구의 달콤한 향기, 그 어린아이는 지금도 6월을 기다릴까, 노란 살구를 그리며...!

 
(202305, 삐비랑의 사소한 일상의 행복 찾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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