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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성산積土成山, 지리산에 올라 우주를 읽다!

by 삐비랑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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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을 지나 연하선경 길을 가는 길목에서 지리산 영봉 천와봉을 가슴에 들인다, 큰 산의 가슴을...!
촛대봉을 지나 연하선경 길을 가는 길목에서 지리산 영봉 천와봉을 가슴에 들인다, 큰 산의 가슴을...!

적토성산積土成山,

이 말의 드높고 드넓은 담대한 깊이에 몰입하며 산을 오른다.

지리산에 오르면 이 말의 울림이 나의 흉곽을 때린다.

적토성산積土成山, 적수성연積水成淵, 

 

이 말의 큰 울림이 작은 나를 아주 사소한 나의 뜻과 나의 비좁은 포부를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게 한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종일 지리산을 걸으면서 제일 먼저 나의 가슴에 밀려오는 생각은 인간의 왜소함, 인간의 우매함, 인간의 어리석음,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이기심, 인간의 옹졸함이다. (여기 인간은 마땅히 나를 이르는 말이다.)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인간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고 교만한 존재인가, 인간인 나의 사소하고 나약하고 작은 존재의 한계에 인식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나'라는 존재가 초라하고 볼품없고 빈약한 미물인지 극명하게 다가온다. 어디든 숨어 사라지고 싶은 심한 열등감까지 밀려온다.

 

지리산을 오르는 내내 이런 묵직하고 맑지 못한 생각과 겨루다 보면 어느 사이 나는 무거는 마음과 몸을 이끌고 세석평전에 올라있고 세석의 샘물로 오랜 기다림과 영혼의 기갈을 해소하고 촛대봉을 지나 연하선경을 넘으면 장터목에 와 있다. 장터목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서면 확 트인 제석봉 가는 길, 고사목과 사방을 두른 만학천봉 드넓은 지리산의 품이 내 발아래 펼쳐 있다. 지리산에 올라 자연과 대지와 우주를 학습하는 이 놀라운 축복, 나는 산을 읽고 자연과 인생을 배운다.

 

세석의 철쭉과 구상나무의 꽃과 새순이 이맘때면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세석의 철쭉과 구상나무의 꽃과 새순이 이맘때면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제석봉 전망대에 앉아 일망무애의 원경을 굽어보노라면 나의 작고 비좁은 흉부는 온데간데 없고 잠든 내 안에 대붕이 꿈틀 하며 일어나 양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눈을 뜨고 멀리 시선을 두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우물 안과 같은 어둡고 답답하고 완고한 감옥에 갇힌 나를 일으켜 세우고 한 마리 큰 새가 된 듯 나를 부추겨 날아오르자고 나를 이끈다. 그동안 내 안에 버티고 있던 내 안의 옹졸하고 쩨쩨하고 비겁하고 아주 사소하기 짝이 없는 수치스러운 자아가 지리산 길에서 슬며시 닳아 사라진 다음이다. 산의 힘이 나에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산의 놀라운 힘을 산의 위의威儀하고 말하였다.

 

이때다, 바로 이때다, 바로 이때쯤이면 나를 상승시켜주는 나를 추동시키는 힘의 근원은 우주에 대한 명철한 인식이다.

자연의 숨은 진리에 대한 수긍이다. 대지의 영감에 점점 닿아가는 상상의 힘이 나에게 미치고 있음이다.

 

적토성산積土成山, 적수성연積水成淵이다.적수성연積水成淵,  적토성산積土成山의 장구한 태산의 시간에 대한 인식의 눈뜸이다. 한 줌의 흙이 쌓여 큰 산을 이루고 한 톨의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연못을 이룬다, 골골이 깊고 깊은 천봉과 수많은 골짜기를, 길고 긴 수많은 능선의 길을, 억만 겁의 바람과 눈보라와 해와 달과 별의 사각이는 소리를, 천둥과 번개와 뇌성과 비와 태풍의 길을, 제석봉과 천왕봉에 앉아 굽어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길을 그리고 있으면, 나의 작은 가슴은 열린 바다가 되고 아청의 아득한 하늘이 펼쳐진 우주의 가슴이 된다.

 

지리산 세석의 연분홍 철쭉의 개화는 5~6월이다!
지리산 세석의 연분홍 철쭉의 개화는 5~6월이다!
고산작물인 지리산 엘레지! 촛대봉에서 장터목으로 향하는 길목 어디나 응달진 곳에서 나를 반긴다!
고산작물인 지리산 엘레지! 촛대봉에서 장터목으로 향하는 길목 어디나 응달진 곳에서 나를 반긴다!

나를 결박하였던 작은 나, 나를 짓밟았던 작은 앎, 나를 옹졸하게 교만하게 인색하게만 하였던 나의 수치와 극명한 나의 밑바닥이 훤히 다 보이기 시작한다, 호연지기와 태연자약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이 산을 통해 말하는 깊은 은유와 상징을 상상하는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알프레드 아들러가 창안한 열등감이라는 개념이 나를 이끄는 힘이었음을 수긍하게 된다. 나의 한계에 대한 극명한 인식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꿈꾸기 시작하였고, 나 스스로 성장과 상승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앨버트로스 새가 되어보겠다는 다짐으로 이끈 것이다. 산은 나에게 나를 끌어올리는 상승의 힘으로 작용하여 나를 가두고 있는 열등감과 한계를 초월한 건강한 촉진재가 된다. 산은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 그 부족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긍정의 자기 암시라는 건강한 나를 회복시켜 준다.

 

산을 통해서 투명한 나를 만나고 산을 통해서 내 영혼의 아픔을 치유하여 나를 상승시키는 기회와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나를 정복하는 길이요 나를 회복하는 길이며 나라는 존재와 우주의 진실에 대해 눈 뜨는 시간과도 만나는 것이다. 

 

한 방울 한 방울 한 톨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다!
한 방울 한 방울 한 톨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다!

그래서 지리산을 오를 때마다 옛날 한동안 신촌 서당에서 읽었던

이 구절을 몇 번이고 암송해 본다.

암송하다 보면 금방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이 결국 닿아 있음이 훤히 다 보인다.

 

積土成山 風雨興焉

(적토성산 풍우흥언)

積水成淵 蛟龍生焉

(적수성연 교룡생언)

積善成德 而神明自得

(적선성덕 이신명자득)

聖心備焉(성심비언  

 

--- 순자<勸學권학>편---

 

한 줌의 흙이 쌓여 큰 산을 이루면 그곳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연못을 이루면 그 못에 교룡(큰 물고기)과 용이 산다.

작은 선행을 쌓아 큰 덕을 이루면 신통한 지혜와 통찰력이 저절로 생겨나

성스러운 자연의 도와 덕이 인간의 마음 가운데 절로 깃든다.

 

산이 부르는 소리 들린다. 공평하고 너그러운 산의 품에 안겨 산의 깊은 숨결을 느끼고 싶다.

느림느림 민달팽이가 되어 천천히 오라고 한다. 벌써 지리산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리산이 부르는 소리가 사각사각 물소리를 지나 솔향기에 젖어 내게 불어온다.

 

저곳까지 가는 길이 지리산이다&#44; 저 정상 표비석에 닿기 위해 산을 가지 않는다&#44; 산은 길이요 과정이다!
저곳까지 가는 길이 지리산이다, 저 정상 표비석에 닿기 위해 산을 가지 않는다, 산은 길이요 과정이다!
산을 만나는 길이 산에 열려있다! 산의 품에 안겨 긴 쉼을 누려볼 일이다!
산을 만나는 길이 산에 열려있다! 산의 품에 안겨 긴 쉼을 누려볼 일이다!

 

20230607, 삐비랑의 사소한 일상의 행복 찾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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